“형, 나 PS5 샀는데… 왜 4K 120Hz가 안돼? 모니터도 144Hz짜리 좋은 건데!”
작년 이맘때쯤, 동생에게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였습니다. 큰맘 먹고 플레이스테이션 5와 고주사율 게이밍 모니터까지 장만했는데, 정작 설정에 들어가니 4K 60Hz가 한계라며 울상이더군요. 저는 전화기 너머로 한숨을 쉬며 물었습니다. “혹시… 그 모니터, HDMI 2.0 아니야?”
빙고. 동생은 ‘주사율(Hz)’ 숫자만 보고 모니터를 샀던 겁니다. 최신 게임 콘솔의 성능을 온전히 맛보기 위해선, 모니터의 ‘HDMI 포트 버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혀 몰랐던 거죠.
이 HDMI 버전의 세계는 아는 사람만 제값을 주고 산 장비의 성능을 100% 뽑아 먹고, 모르는 사람은 절반의 성능만 쓰면서도 뭐가 문제인지조차 모르는, 아주 불공평한 곳입니다.
그래서 핵심만 요약하면? (3분 순삭)
- HDMI 2.0은 ‘왕복 4차선 도로’예요. 4K 60Hz까지는 넉넉하게 다닐 수 있죠.
- HDMI 2.1은 ‘왕복 8차선 고속도로’입니다. 4K 120Hz, 8K 60Hz 같은 어마어마한 데이터가 막힘없이 달릴 수 있습니다.
- 진짜 차이는 ‘게이밍 기능’에 있어요. VRR(화면 찢어짐 방지), ALLM(자동 저지연 모드) 같은 핵심 기술은 HDMI 2.1에서만 제대로 작동합니다.
- 결론: PS5, Xbox Series X 같은 최신 콘솔이나 RTX 30/40 시리즈 그래픽카드를 쓴다면, HDMI 2.1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고속도로 차선, 2배로 넓어졌는데 뭐가 문제?
HDMI 2.0과 2.1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대역폭(Bandwidth)’, 즉 데이터가 지나다니는 도로의 넓이입니다.
- HDMI 2.0: 18Gbps (왕복 4차선)
- HDMI 2.1: 48Gbps (왕복 8차선)
도로가 2배 이상 넓어졌으니, 훨씬 더 많은 양의 영상 데이터를 한 번에 보낼 수 있게 된 거죠. 이게 바로 HDMI 2.0이 4K 60Hz가 한계인 반면, HDMI 2.1은 4K 120Hz, 심지어 8K 60Hz까지 지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동생의 모니터는 4차선 도로(HDMI 2.0)였던 겁니다. 아무리 빠른 차(PS5)가 있어도, 도로가 좁아서 제 속도를 낼 수 없었던 거죠.
진짜배기 차이는 ‘게임 편의 기능’입니다
“저는 4K 120Hz까지는 필요 없는데, 그럼 HDMI 2.0도 괜찮지 않나요?”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HDMI 2.1의 진짜 무서움은 단순히 도로가 넓다는 데에만 있지 않아요. 바로 이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을 위한 **’최첨단 교통 시스템’**에 있습니다.
VRR (Variable Refresh Rate, 가변 주사율)
- 이게 뭐죠? 게임 속 장면이 복잡해지면 그래픽카드가 프레임을 미처 다 못 그려서 출렁일 때가 있어요. 이때 모니터도 그래픽카드에 맞춰 주사율을 실시간으로 바꿔주는 기술입니다.
- 그래서 뭐가 좋은데요? 화면이 위아래로 찢어지는 ‘테어링(Tearing)’ 현상을 막아줘서, 훨씬 부드럽고 쾌적한 화면을 보여줍니다. 지싱크(G-Sync), 프리싱크(FreeSync)와 비슷한 기술이라고 생각하면 쉬워요.
ALLM (Auto Low Latency Mode, 자동 저지연 모드)
- 이게 뭐죠? 게임 콘솔이 “나 지금부터 게임 시작한다!” 하고 신호를 보내면, TV나 모니터가 알아서 화면 보정 기능(선명하게, 부드럽게 등)을 끄고 가장 반응 속도가 빠른 ‘게임 모드’로 자동 전환하는 기능입니다.
- 그래서 뭐가 좋은데요? 우리가 버튼을 눌렀을 때 화면에 반응하기까지의 지연 시간(인풋랙)을 최소화해 줍니다. 리듬 게임이나 격투 게임에서 승패를 가르는 아주 중요한 기능이죠.
이 두 가지 핵심 기능은 오직 HDMI 2.1에서만 완벽하게 지원됩니다. 동생은 결국 눈물을 머금고 기존 모니터를 중고로 팔고, HDMI 2.1을 지원하는 새 모니터를 사고 나서야 진정한 차세대 게임의 세계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잠깐! 컴덕을 위한 TMI (가짜 HDMI 2.1 주의보!)
이게 정말 화나는 부분인데요, HDMI 라이선스를 관리하는 곳에서 일부 HDMI 2.0 포트에도 ‘HDMI 2.1’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도록 허용해버렸습니다. 미친 거죠. ALLM 같은 일부 기능만 지원해도 2.1이라고 표기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품 스펙을 볼 때 ‘HDMI 2.1’이라는 이름만 믿으면 안 됩니다. 상세 스펙표에서 ‘대역폭 48Gbps 지원’ 또는 ‘4K 120Hz 지원’ 이라는 문구를 반드시 눈으로 확인해야, 진짜배기 HDMI 2.1 포트가 달린 제품을 고를 수 있습니다.
내 게임기가 제 성능을 내고 있을까?
HDMI 2.1과 2.0의 차이, 이제 확실히 감이 오시죠?
단순히 더 높은 해상도와 주사율을 위한 규격이 아닙니다. 차세대 게임의 ‘부드러움’과 ‘쾌적함’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편의 기능들이 포함된, 완전히 다른 차원의 규격인 셈이죠.
만약 당신이 PS5, Xbox Series X, 또는 고성능 PC를 가지고 있다면, 지금 당장 모니터나 TV 뒤의 HDMI 포트를 확인해보세요. 혹시 당신도 8차선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는 슈퍼카를 사놓고, 좁은 국도 위에서 답답하게 달리고 있지는 않나요?
HDMI 2.1을 쓰려면 케이블도 바꿔야 하나요?
네, 반드시 바꿔야 합니다. HDMI 2.1의 48Gbps 대역폭을 모두 사용하려면, ‘Ultra High Speed’ 인증을 받은 HDMI 케이블을 사용해야 합니다. 기존에 쓰던 High Speed 케이블(HDMI 2.0용)을 그대로 쓰면 제 성능이 나오지 않거나, 화면이 깜빡이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DP(DisplayPort) 1.4랑 HDMI 2.1 중에 뭐가 더 좋은가요?
PC 환경에서는 둘 다 훌륭한 선택지입니다. DP 1.4는 대역폭이 32.4Gbps로 HDMI 2.1보다는 낮지만, 압축 기술(DSC)을 통해 4K 144Hz 이상도 지원해서 PC 게이밍에서는 여전히 현역입니다. 하지만 PS5나 Xbox 같은 콘솔 게임기는 DP 포트가 없고 HDMI만 지원하므로, 콘솔 게이머에게는 HDMI 2.1이 유일한 선택지입니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볼 때도 HDMI 2.1이 좋은가요?
아니요, 영상 감상이 주 목적이라면 HDMI 2.0으로도 충분합니다.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는 초당 24프레임 또는 60프레임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4K 60Hz를 지원하는 HDMI 2.0으로도 화질 저하 없이 감상할 수 있습니다. HDMI 2.1의 진가는 ‘고주사율 게이밍’ 환경에서 발휘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