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어쩌면 수천 시간을 쏟아부어 키운 내 캐릭터. 전우들과 울고 웃었던 가상 세계가 ‘서비스 종료’ 공지 한 줄에 재가 되어 사라지던 그 순간의 허무함, 기억하십니까?
그건 단순한 분노를 넘어섭니다. 내 시간과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든, 삶의 한 페이지가 강제로 찢겨 나가는 듯한 깊은 상실감입니다.
최근 유럽에서 시작된 ‘스탑 킬링 게임즈(Stop Killing Games)’ 캠페인은 바로 이 상실감에 대한 100만 명의 집단적인 외침입니다. 기업이 이윤 논리로 우리의 디지털 추억에 사형 선고를 내리는 관행을 멈추라는 절박한 요구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서버 끄지 마!”라는 구호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 이면에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게임 서비스 종료, 피할 수 없는 비극인가
기업의 현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까놓고 말해봅시다. 게임 회사는 자선 단체가 아닙니다. 수익이 나지 않는 게임의 서버를 영원히 유지하라는 요구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단순히 서버 유지비 문제만이 아닙니다. 게임에 사용된 음악이나 영상의 라이선스 기간 만료, 여러 게임에 걸쳐 사용된 IP의 보안 문제처럼, 개발사조차 통제하기 힘든 ‘어른의 사정’이 발목을 잡는 덫처럼 얽혀 있습니다.
최근 EA가 발표한 의 2026년 서버 종료 소식은 이 비극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씁쓸한 예시입니다. 한때 거대한 기대를 모았던 세계가 이제 명확한 사망 선고일을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탑 킬링 게임즈 운동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디지털 유산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할까요?
이상적인 작별: 강제가 아닌 ‘지혜로운 이양’
해답은 커뮤니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해답은 없는 걸까요? 저는 그 열쇠가 ‘강제’가 아닌 ‘지혜로운 이양’에 있다고 믿습니다. 회사가 영원히 손해를 감수하는 대신, 그 게임을 사랑했던 커뮤니티에게 ‘추억의 바통’을 넘겨주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이미 환상적인 선례가 있습니다. 바로 입니다.
개발사와 유통사가 사라진 지 10년이 넘었지만, 이 게임은 ‘포지드 얼라이언스 포에버(Forged Alliance Forever, FAF)’라는 커뮤니티 덕분에 여전히 살아 숨 쉽니다.
게임 서비스 종료 방식 비교 | 강제 서버 유지 | 커뮤니티 이양 (FAF 모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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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 게임 개발사 | 게임 커뮤니티 |
비용 부담 | 개발사가 지속적인 손실 감수 | 커뮤니티가 자발적으로 운영 |
지속 가능성 | 낮음 (결국 다시 종료될 가능성 높음) | 높음 (열정이 있는 한 계속됨) |
IP 홀더 이익 | 없음 (오히려 손해) | 있음 (신규 유저의 게임 구매로 수익 발생) |
결과 | 기업과 유저 모두에게 불만족스러운 임시방편 | 기업과 유저 모두가 ‘윈윈’하는 이상적인 모델 |
FAF가 보여준 해법은, 그야말로 예술입니다. 커뮤니티가 직접 매치메이킹 서버와 모드 지원 시스템을 운영하지만, 이 서버에 접속하려면 스팀(Steam)에서 정식으로 게임을 구매했음을 인증해야 합니다. 즉, IP를 소유한 회사는 게임이 단종된 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판매 수익을 얻습니다. 유저들은 사랑하는 게임을 계속 즐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상생 아닐까요?
디지털 소유권,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때
‘언제까지’가 아니라 ‘어떻게’
물론 의 사례처럼 문제는 더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수많은 패치와 확장팩을 거친 게임이라면, 대체 ‘어떤 버전’의 추억을 보존해야 할까요? 모든 게임에 FAF 모델을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스탑 킬링 게임즈’ 운동이 던지는 진짜 메시지가 빛을 발합니다. 이제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 게임을 살려둘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의 디지털 추억과 아름답게 작별할 것인가?”를 물어야 합니다.
이제 개발사들은 게임을 설계하는 첫 단계부터 ‘아름다운 마무리’를 고민해야 합니다. 커뮤니티에 서버 운영 권한을 넘길 수 있도록, 라이선스가 얽힌 요소를 쉽게 분리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자신들이 낳은 창조물과, 그 세계를 사랑해 준 팬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스탑 킬링 게임즈’ 운동이 요구하는 이 시대의 새로운 디지털 책임감입니다.
우리의 시간과 열정, 그리고 추억이 담긴 세계가 더는 공지 한 줄에 허무하게 증발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스탑 킬링 게임즈(Stop Killing Games)' 운동이 정확히 무엇인가요?
게임 개발사가 온라인 전용 게임의 서비스를 일방적으로 종료하여, 돈을 내고 구매한 게임을 더 이상 즐길 수 없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소비자 운동입니다. 이들은 개발사가 서비스 종료 시에도 게임을 계속 플레이할 수 있는 방법(예: 커뮤니티 서버 지원, 오프라인 패치 제공)을 법적으로 의무화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게임 회사가 돈 안 되는 게임 서버를 계속 켜두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요?
맞습니다. 단순히 서버를 영원히 유지하라는 요구는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이 운동의 지지자들이 제안하는 핵심은 ‘커뮤니티 이양’과 같은 윈윈(Win-Win) 전략입니다. 회사가 직접 손해를 보는 대신, 게임을 사랑하는 커뮤니티가 자발적으로 서버를 운영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기술적 지원(소스 코드나 서버 프로그램 제공 등)을 하는 것이 이상적인 해법으로 꼽힙니다.
모든 게임이 서비스 종료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나요?
현실적으로 모든 게임이 살아남기는 어렵습니다. 커뮤니티의 열정과 참여가 없다면 자연스럽게 잊힐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을 기회’ 자체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기업이 일방적으로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유저들에게 그 운명을 맡길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이 이 운동의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