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청정기나 청소기 사려고 인터넷 좀 뒤져보면 꼭 ‘H13 등급 트루 헤파(True HEPA) 필터 채용!’ 이런 문구를 대문짝만하게 광고하잖아요. 근데 또 옆에 보면 ‘초미세먼지 99.995% 제거, H14 등급!’이라면서 훨씬 비싼 제품이 있고요.
대체 이 H 뒤에 붙은 숫자가 뭐길래 가격이 이렇게 널뛰기를 하는 건지, 저도 처음엔 엄청 헷갈렸어요. “에이, 비싼 게 좋은 거겠지” 하면서 덜컥 H14 등급 제품을 살 뻔하기도 했고요. 오늘은 이 헤파필터 등급의 비밀과 숫자의 함정, 그리고 어떤 등급을 골라야 내 지갑과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친구에게 알려주듯 쉽게 설명해 드릴게요.
그래서 핵심만 요약하면? (3분 순삭)
- H13, H14는 ‘필터 성능 등급’: 숫자가 높을수록 먼지를 더 잘 거르는 촘촘한 그물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 성능 차이는 분명 존재: H13은 먼지 1만 개 중 5개를 놓치고, H14는 0.5개를 놓쳐요. 성능만 보면 H14가 10배 더 좋은 게 맞습니다.
- 하지만! 일반 가정에서는 H13이면 충분: H14는 물론 좋지만, 그 차이를 우리 코가 체감하기는 어려워요. 오히려 불필요한 비용과 다른 성능(공기정화면적) 저하를 고려하면 H13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그래서 H13, H14가 대체 뭔데? (feat. 촘촘한 그물망)
복잡한 표준규격(EN1822) 같은 건 몰라도 됩니다. 그냥 ‘아주 작은 먼지를 거르는 그물망의 촘촘함’을 숫자로 나타낸 등급이라고 생각하세요. 여기서 기준이 되는 먼지는 0.3마이크로미터(μm) 크기인데, 이게 머리카락 굵기의 약 200분의 1 수준으로 아주 작은 녀석입니다.
이 0.3μm 크기의 먼지를 얼마나 잘 거르냐에 따라 등급이 나뉘어요.
- H13 등급: 0.3μm 먼지를 99.95% 이상 걸러냄. (먼지 10,000개가 들어오면 5개는 통과)
- H14 등급: 0.3μm 먼지를 99.995% 이상 걸러냄. (먼지 10,000개가 들어오면 0.5개, 즉 2만 개 중 1개만 통과)
수치만 보면 H14가 H13보다 10배 더 깐깐하게 먼지를 걸러내는 게 맞아요. 이 숫자를 보고 “와, 10배나 차이 나네? 무조건 H14 사야지!”라고 생각하기 쉽죠. 저도 그랬으니까요.
H14가 무조건 좋을까? 제가 H13을 추천하는 현실적인 이유
네, 성능 자체는 H14가 더 좋은 게 팩트입니다. 병원 수술실이나 반도체 공장 같은 특수 환경에서는 이 미세한 차이가 중요하겠죠.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일반적인 가정집에서는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0.045%의 차이, 과연 우리 코가 구분할 수 있을까요?
99.95%와 99.995%. 이 둘의 차이는 불과 0.045%p입니다. 방 안에 떠다니는 수억 개의 먼지 입자 중에서 수십 개를 더 잡는 수준이죠. 알레르기나 천식이 극도로 심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차이를 몸으로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H13 등급만으로도 이미 우리가 걱정하는 초미세먼지(PM2.5)는 거의 다 걸러주고 있거든요.
필터의 ‘종특’: 촘촘할수록 바람이 약해진다 (CADR의 함정)
이게 제가 H13을 추천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필터가 촘촘해진다는 건, 공기가 통과하기 더 빽빽하고 힘들어졌다는 뜻이에요. 얇은 마스크보다 KF94 마스크를 썼을 때 숨쉬기 힘든 것과 똑같죠.
공기청정기에서 가장 중요한 성능 지표 중 하나가 ‘CADR(깨끗한 공기 공급률)’, 즉 1분당 얼마나 넓은 공간의 공기를 정화해서 뱉어내느냐 하는 건데, 필터가 너무 촘촘하면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이 CADR 수치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 H14 필터의 딜레마: 필터 성능은 최고지만, 공기가 잘 안 통하니 공기 순환 속도가 느려짐.
- 결과: 방 전체의 공기를 한번 정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오히려 H13 제품보다 더 오래 걸리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요. 물론 H14 필터를 쓰면서도 높은 CADR을 유지하려면, 그만큼 더 강력한 팬 모터를 써야 하고, 그건 결국 더 비싼 가격과 더 큰 소음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H14는 ‘성능’이라는 스탯에만 몰빵하느라, ‘가성비’, ‘정화 속도’, ‘소음’ 같은 다른 중요한 스탯을 희생시키는 셈이죠.
잠깐! 컴덕을 위한 TMI (시간 없으면 넘어가세요!)
왜 하필 0.3μm 크기의 먼지를 기준으로 테스트하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더 작은 먼지도 있는데 말이죠. 그 이유는 0.3μm가 필터로 잡기 가장 까다로운 ‘최대 관통 입자 크기(MPPS)’이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작은 입자(0.1μm 등)는 오히려 공기 중에서 불규칙하게 마구 튀어 다니는 ‘브라운 운동’ 때문에 필터 섬유에 더 잘 달라붙고, 0.3μm보다 큰 입자는 그냥 그물에 걸리듯 쉽게 잡혀요. 즉, 가장 잡기 어려운 0.3μm를 99.95% 이상 잡는다는 건, 나머지 크기의 입자들은 더 잘 잡는다는 의미가 숨어있는 거죠.
우리 집에 맞는 필터 등급은? 최종 결정 체크리스트
자, 이제 나에게 맞는 필터 등급을 고를 시간입니다. 이 체크리스트로 최종 결정해보세요.
- 나는 일반적인 미세먼지, 꽃가루, 반려동물 털, 생활 먼지 제거가 주된 목적인가?
- YES! → H13 등급이면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가성비와 성능의 완벽한 균형점이에요.
- 가족 중에 천식, 비염 등 호흡기가 매우 민감한 사람이 있어 0.1%의 가능성도 줄이고 싶은가?
- YES! → H13이 기본적으로 훌륭한 선택지지만, 예산이 허락하고 CADR 수치나 소음 리뷰를 꼼꼼히 확인했다면 H14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심리적 안정감도 중요하니까요.
- 나는 병원, 실험실, 혹은 무균실에 가까운 초정밀 청정 환경을 원하는가?
- YES! → 바로 이곳이 H14 등급 필터가 활약해야 할 전문 영역입니다.
이제 필터 등급, 자신 있게 고를 수 있겠죠?
이제 공기청정기나 청소기 상세 페이지에서 H13, H14 숫자를 봐도 더 이상 헷갈리지 않으실 겁니다. 숫자가 높을수록 좋은 건 맞지만, 그게 항상 나에게 ‘최고의 선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으니까요.
대부분의 우리에겐 H13 등급만으로도 충분히 맑고 깨끗한 공기를 누릴 수 있습니다. 불필요한 추가 비용을 내고 체감도 어려운 성능을 쫓기보다는, 그 돈으로 필터를 제때 교체해주고, 우리 집 평수에 맞는 CADR 값을 가진 제품을 고르는 것이 훨씬 현명한 소비 아닐까요?
H12 등급 이하는 헤파필터라고 부르면 안 되나요?
정확히는 유럽 표준(EN1822)에 따라 H13 등급부터 ‘HEPA 필터’라고 부릅니다. 그 아래인 E10~E12 등급은 ‘에파(EPA) 필터’ 또는 ‘세미 헤파’라고 불리며 헤파필터와는 구분돼요. 물론 E12 등급(99.5% 제거)도 충분히 좋은 성능이지만, 이왕이면 H13 등급 이상을 고르는 게 일반적입니다.
‘트루 헤파(True HEPA)’는 그냥 헤파랑 다른 건가요?
‘트루 헤파’는 마케팅 용어에 가깝지만, 보통 H13 등급 이상의 성능을 가진 필터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미국 기준(DOE)으로는 0.3μm 입자를 99.97% 이상 제거하는 필터를 의미하는데, 이는 유럽 기준의 H13(99.95%)과 H14(99.995%) 사이 어딘가에 해당하죠. 그냥 ‘믿을 만한 고성능 헤파필터’ 정도로 이해하시면 편해요. 제품을 고를 땐 용어보다는, 한국공기청정협회의 CA 인증처럼 공신력 있는 기관의 인증을 받았는지 확인하는 게 더 확실합니다.
필터는 얼마나 자주 갈아야 하나요?
필터 교체 주기는 제품과 사용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6개월에서 2년 사이입니다. 대부분의 공기청정기에는 필터 교체 알림 기능이 있으니 제때 갈아주는 게 중요해요. 필터 수명이 다 되면 성능이 급격히 떨어져서 전기만 먹는 선풍기가 될 수 있거든요. 비싼 H14 필터 하나로 2년 쓰는 것보다, 저렴한 H13 필터를 1년마다 갈아주는 게 공기 질 유지에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