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제가 큰맘 먹고 커브드 게이밍 모니터를 샀을 때의 일입니다. ‘VA 패널’이라는 거였는데, 명암비가 좋아서 영화 볼 때 어두운 부분이 진짜 까맣게 보인다는 말에 혹해서 샀죠. 처음엔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모니터로 문서 작업을 하거나 웹서핑을 오래 하면 눈이 쉽게 피로하고, 글자 주변에 미세한 잔상이 느껴지는 겁니다.
“원래 모니터 오래 보면 다 그런 거 아니야?”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죠. 그러다 최근에 작업용으로 ‘IPS 패널’ 모니터를 새로 들였는데, 세상에. 똑같은 시간 동안 작업을 해도 눈이 훨씬 편안하고, 화면 전체의 색감이 균일하고 쨍한 느낌이 들더군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아, 패널 종류라는 게 이렇게 중요하구나.”
가성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본 입장에서, 모니터 패널은 단순히 스펙표의 한 줄이 아니라, 여러분의 ‘눈 건강’과 ‘작업 효율’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입니다.
그래서 패널이 뭔데요? (IPS, VA, TN 삼대장)
모니터 패널은 화면에 색을 뿌려주는 ‘도화지’의 종류라고 생각하면 가장 쉽습니다. 이 도화지를 만드는 방식에 따라 크게 IPS, VA, TN이라는 세 명의 장인이 있고, 각자 장단점이 아주 뚜렷해요.
1. IPS (In-Plane Switching) – ‘만능 우등생’
- 특징: 액정 분자를 수평으로 움직여서 빛을 조절하는 방식.
- 장점:
- 광시야각: 어느 각도에서 봐도 색상 왜곡이 거의 없습니다. 옆에서 친구랑 같이 영화 보거나, 여러 명이 둘러앉아 화면 볼 때 최고죠.
- 정확한 색 표현: 색이 아주 정확하고 화사해서, 사진 편집이나 영상 색 보정 같은 디자인 작업에 가장 적합합니다.
- 편안한 가독성: 픽셀 구조상 글자가 선명하게 보여서 웹서핑이나 문서 작업을 오래 해도 눈이 편안합니다.
- 단점:
- 빛샘 현상: 어두운 화면에서 모서리 부분이 허옇게 뜨는 ‘빛샘’ 현상이 고질병입니다. 특히 불 끄고 영화 볼 때 좀 거슬릴 수 있어요.
- 낮은 명암비: 검은색을 표현할 때 완벽한 검은색이 아니라 살짝 ‘회색빛 도는 검은색’으로 보입니다.
2. VA (Vertical Alignment) – ‘명암비의 왕’
- 특징: 액정 분자를 수직으로 세워서 빛을 조절하는 방식.
- 장점:
- 압도적인 명암비: 검은색을 아주 깊고 진하게 표현합니다. 덕분에 어두운 장면이 많은 영화나 게임을 할 때 몰입감이 엄청나요.
- 커브드 패널: 구조상 구부리기 쉬워서, 대부분의 ‘커브드 모니터’는 VA 패널을 사용합니다.
- 단점:
- 느린 응답속도: 특히 어두운 화면에서 잔상이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FPS 게임처럼 빠른 화면 전환이 중요할 때 단점이 두드러져요.
- 시야각: 정면에서 볼 땐 괜찮지만, 조금만 옆에서 봐도 색이 허옇게 뜨고 물 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3. TN (Twisted Nematic) – ‘반응속도의 신’
- 특징: 가장 오래된 방식으로, 액정을 꼬아서 빛을 조절합니다.
- 장점:
- 미친 응답속도: 반응속도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0.1초의 반응이 중요한 프로게이머들이 선호하는 이유죠.
- 단점:
- 최악의 시야각과 색감: 조금만 각도를 틀어도 색이 완전히 왜곡되고, 전체적으로 물 빠진 색감이라 영상 감상이나 디자인 작업에는 최악입니다.
- 현재: 기술이 발전하면서 IPS나 VA 패널의 응답속도도 매우 빨라져서, 이제는 아주 극소수의 초고주사율 게이밍 모니터를 제외하면 거의 쓰이지 않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나한테 맞는 패널은 뭘까요?
이제 각 패널의 성격을 알았으니, 내 사용 목적에 맞는 ‘도화지’를 고르면 됩니다.
이런 분들은 무조건 IPS를 추천합니다
- 사진/영상 편집, 그래픽 디자인 등 색 정확도가 중요한 작업을 하시는 분. (선택이 아닌 필수)
- 웹서핑, 문서 작업, 코딩 등 텍스트를 오래 봐야 하는 분. (눈 건강을 위해)
- 여러 명이 함께 화면을 보거나, 다양한 각도에서 모니터를 볼 일이 많은 분.
- “나는 올라운더로 쓰고 싶다!” 게임, 영상, 작업 등 모든 걸 무난하게 즐기고 싶은 분. (가장 표준적인 선택)
이런 분들은 VA를 고려해볼 만합니다
- 오직 ‘영화 감상’이 주된 목적이고, 불 끄고 보는 걸 즐기시는 분. (깊은 검은색의 몰입감)
- ‘커브드 모니터’의 휘어진 화면을 꼭 써보고 싶으신 분.
- 주로 하는 게임이 레이싱이나 RPG처럼 응답속도에 덜 민감한 장르일 때.
잠깐! 컴덕을 위한 TMI (시간 없으면 넘어가세요!)
- IPS 패널의 진화 (Nano-IPS, OLED): IPS의 유일한 단점인 ‘느린 응답속도’와 ‘낮은 명암비’를 개선하기 위한 기술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요. LG의 ‘나노 IPS’ 는 색 표현력은 더 높이고 응답속도는 게이밍에 적합할 정도로 끌어올린 고급 IPS 패널입니다. 아예 차원을 달리하는 OLED는 픽셀 하나하나가 스스로 빛을 내서, IPS의 정확한 색감과 VA의 완벽한 검은색을 모두 가진 ‘완전체’ 패널이지만, 아직은 매우 비싸고 ‘번인(Burn-in)’이라는 수명 문제가 있습니다.
- ‘짭 IPS’를 조심하세요: 가끔 저가형 모니터 스펙에 ADS, PLS 같은 이름이 보일 때가 있어요. 이건 IPS와 유사한 기술을 쓰는 ‘IPS 계열’ 패널들입니다. 성능은 정통 IPS 패널보다 약간 떨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일반적인 용도로는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려우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좋은 모니터를 고르는 다른 기준들
패널의 종류를 이해했다면, 이제 다른 핵심 요소들도 확인하여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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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S 패널 모니터는 무조건 좋은 건가요?
아니요, ‘어떤 IPS 패널’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같은 IPS라도 제조사나 등급에 따라 색 재현율(sRGB, DCI-P3), 최대 밝기, 응답속도 등 품질 차이가 천차만별입니다. 무조건 ‘IPS’라는 이름만 보고 사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수준의 색 재현율과 밝기를 갖췄는지 상세 스펙을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게이밍 모니터는 IPS, VA 중에 뭐가 더 좋아요?
이건 게이머들 사이에서도 영원한 논쟁거리입니다.
어두운 분위기의 공포 게임이나 RPG 유저: 깊은 명암비로 몰입감을 높여주는 VA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결국 개인의 취향과 주로 하는 게임 장르에 따라 선택이 갈립니다. 가능하다면 직접 매장에 가서 두 패널의 화면을 비교해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경쟁적인 FPS 게임 유저: 빠른 응답속도와 정확한 색감으로 적을 식별하기 좋은 IPS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IPS Glow는 불량인가요? 교환 대상인가요?
IPS Glow 자체는 패널의 구조적인 특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이므로, 일반적으로 불량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IPS 모니터는 어느 정도의 Glow 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Glow 현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교환이나 환불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매우 심하여 정상적인 사용(특히 어두운 화면 시청)에 큰 불편을 초래할 정도라면, 제조사나 판매처의 정책에 따라 교환이나 점검을 받아볼 수는 있습니다. 이는 주관적인 판단 기준이 크므로, 구매 전 리뷰 등을 통해 해당 모델의 Glow 수준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IPS 모니터 빛샘 현상, 교환 사유가 되나요?
이건 제조사 정책에 따라 다릅니다. 빛샘은 IPS 패널의 구조적인 특징(종특)이라, 일상적인 사용에 지장을 줄 정도의 심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의 제조사에서 불량으로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구매 전에 해당 제조사의 불량 화소 및 빛샘 정책을 미리 확인해보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