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3년 전 처음 샀을 땐 날아다녔던 내 컴퓨터.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전원 버튼을 누르고 커피 한 잔을 타 와도 아직 바탕화면이 다 안 뜨는 ‘고물’이 되어버렸죠. 폴더 하나 여는 데도 하세월, 인터넷 창은 왜 이렇게 버벅이는지. “아, 이제 포맷할 때가 됐나…” 하고 한숨부터 나옵니다.
저도 예전에 그랬습니다. 컴퓨터가 느려지면 무조건 ‘포맷’이 만병통치약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포맷은 모든 걸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너무나 귀찮고 힘든 과정입니다. 몇 번의 삽질 끝에, 저는 컴퓨터가 느려지는 데는 아주 명백한 ‘이유’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만 잘 해결해주면, 굳이 포맷을 하지 않아도 처음 샀을 때의 쾌적함을 되찾을 수 있었죠.
그래서 핵심만 요약하면? (3분 순삭)
- 시작프로그램이 범인: 컴퓨터를 켜자마자 버벅인다면, 99%는 시작프로그램 과다 문제입니다.
- ‘공짜’ 프로그램의 배신: 나도 모르게 설치된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뒤에서 컴퓨터 자원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 컴퓨터도 열 받으면 파업합니다: 본체에서 비행기 소리가 난다면, 먼지 때문에 열을 식히지 못해 스스로 성능을 낮추고 있는 겁니다.
- 가장 확실한 투자, SSD: 만약 아직도 HDD를 쓰고 있다면, 다른 모든 걸 떠나 SSD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새 컴퓨터를 사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범인부터 찾읍시다: 당신의 컴퓨터를 몰래 조종하는 녀석들
컴퓨터가 느려지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너무 많은 프로그램들이 동시에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스마트폰에 앱을 수백 개 깔아두면 배터리가 빨리 닳는 것과 같은 원리죠.
부팅 속도의 주범, ‘시작프로그램’ 정리하기
컴퓨터를 켜자마자 바탕화면이 뜨고도 한참을 버벅인다면, 범인은 바로 ‘시작프로그램’입니다. 윈도우가 시작될 때 “나도 같이 시작할래!” 하고 아우성치는 프로그램이 너무 많은 거죠.
- 키보드에서 Ctrl + Shift + Esc 키를 동시에 눌러 ‘작업 관리자’를 실행하세요.
- ‘시작 앱’ (또는 구버전 윈도우의 ‘시작프로그램’) 탭을 클릭하세요.
- 목록을 쭉 보세요. 아마 내가 설치한 기억도 없는 낯선 이름들이 가득할 겁니다. 여기서 ‘상태’가 ‘사용’으로 되어있는 것들이 부팅 속도를 갉아먹는 주범들입니다.
- NVIDIA, AMD, Intel, Realtek, Microsoft 같은 이름이 들어간 것과 보안 프로그램(V3, 알약 등)을 제외하고, 나머지 불필요한 프로그램들은 모두 선택 후 ‘사용 안 함’ 버튼을 누르세요.
저도 처음 이걸 확인했을 때, 정체불명의 프로그램 20여 개가 멋대로 시작되고 있는 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것만 정리해줘도 부팅 속도가 최소 2배는 빨라집니다.
가장 흔한 착각: “많이 깔아도 안 쓰면 괜찮다?”
“프로그램은 많이 깔려있지만, 내가 직접 실행만 안 하면 괜찮은 거 아냐?” 라고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입니다. 많은 프로그램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백그라운드 서비스’라는 형태로 계속해서 컴퓨터의 자원을 사용하고 있거든요.
지금 당장 ‘프로그램 추가/제거’를 열어보세요
- 윈도우 키 + R 을 눌러 실행창을 열고, appwiz.cpl 이라고 입력한 뒤 엔터를 치세요. ‘프로그램 추가/제거’ 창이 바로 뜰 겁니다.
- 설치된 프로그램 목록을 천천히 살펴보세요. 아마 깜짝 놀라실 겁니다.
- 정체불명의 ‘툴바(Toolbar)’, ‘서치(Search)’ 프로그램: 인터넷 서핑 중 ‘예’ 버튼 한 번 잘못 눌렀다가 깔리는 악성 프로그램들입니다.
- 각종 ‘클리너(Cleaner)’, ‘최적화’ 프로그램: 오히려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들거나 광고만 띄우는 가짜 프로그램일 확률이 높습니다.
- 은행, 관공서 보안 프로그램 (ActiveX 찌꺼기): 한 번 쓰고 나면 지워야 하는데, 대부분 그대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구라제거기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해 한 번에 정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책상 위가 어지러우면 일의 능률이 떨어지듯, 컴퓨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안 쓰는 프로그램은 과감하게 삭제하세요.
의외의 복병: 컴퓨터도 ‘열’ 받으면 일을 안 합니다
컴퓨터 본체에서 갑자기 “위이이잉-” 하는 비행기 이륙 소리가 들리면서 급격하게 느려진 경험, 있으신가요? 그건 컴퓨터가 “나 너무 더워! 열 좀 식혀줘!” 하고 보내는 비상 신호입니다.
CPU나 그래픽카드 같은 핵심 부품들은 너무 뜨거워지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성능을 강제로 낮춥니다. 이걸 ‘쓰로틀링(Throttling)’이라고 해요. 그리고 발열의 주원인은 99% ‘먼지’입니다. 쿨링 팬과 방열판에 먼지가 솜이불처럼 쌓여서, 열을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는 거죠.
1~2년에 한 번씩, 컴퓨터 전원을 완전히 끄고 본체 옆판을 열어보세요. 그리고 에어 스프레이로 내부 먼지를 시원하게 불어내 주는 것만으로도 쓰로틀링 현상을 막고 원래의 성능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잠깐! 이 분야 덕후를 위한 TMI (시간 없으면 넘어가세요!)
사실 컴퓨터 속도 저하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저장장치’의 종류에 있습니다. 만약 5년 이상 된 컴퓨터가 아직도 ‘HDD(하드디스크)’를 메인 드라이브로 쓰고 있다면, 위에서 알려드린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체감 성능 향상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HDD는 물리적인 원판(LP판 같은)을 회전시켜 데이터를 읽는 구시대적인 방식이라, 요즘 나오는 ‘SSD(반도체 메모리)’와는 속도 비교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느려터진 컴퓨터에 ‘SSD’를 달아주는 것은, 노인에게 최신형 운동화를 신겨주는 게 아니라, 아예 젊은 심장을 이식해주는 것과 같은 차원의 업그레이드입니다.
포맷은 최후의 수단일 뿐입니다
컴퓨터가 느려지는 건, 고장이 아니라 대부분 ‘관리 소홀’ 때문입니다. 자동차도 주기적으로 엔진 오일을 갈고 타이어 공기압을 체크해줘야 제 성능을 내는 것과 똑같죠.
오늘 알려드린 방법대로, 시작프로그램을 정리하고, 안 쓰는 프로그램을 지우고, 내부 먼지만 청소해줘도 컴퓨터는 충분히 다시 빨라질 수 있습니다. 포맷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내 컴퓨터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세요.
위에서 알려준 방법 다 해봤는데도 느려요. 그럼 뭘 해야 하죠?
그렇다면 가장 먼저 ‘저장장치’가 HDD인지 SSD인지 확인해보세요. 만약 HDD라면, 주저 없이 SSD로 교체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5~10만 원 정도의 투자로, 마치 새 컴퓨터를 산 것 같은 가장 드라마틱한 성능 향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나 악성코드 때문에 느려진 걸 수도 있나요?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하지만 요즘엔 윈도우에 기본으로 내장된 ‘Windows Defender(디펜더)’의 성능이 매우 좋아져서, 웬만한 바이러스는 알아서 잘 막아줍니다. 오히려 V3, 알약 같은 여러 개의 백신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이 서로 충돌을 일으켜 컴퓨터를 더 느리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디펜더 하나만 믿고, 출처가 불분명한 파일은 다운로드하지 않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결국 포맷을 해야겠는데, 직접 해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요즘엔 USB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윈도우를 새로 설치할 수 있습니다. 단, 포맷은 C드라이브의 모든 데이터가 삭제되는 작업이니, 반드시 바탕화면이나 내 문서에 있는 중요한 파일들(사진, 문서, 공인인증서 등)을 D드라이브나 외장하드에 미리 백업해두는 것을 잊지 마세요.